Dear Ms. Joyce Kim

(With my deep consideration for being polite, I am writing in my poor English to send this e-mail before my visit. Please read this in consideration. ^^)

Hello. I am Frank Kang who will visit Silicon Valley in February by the introduction of Mr. Greg Moon, the president of Softbank Ventures Korea.

At first, I was afraid that my visit would interfere with your busy schedule; however, it was a great pleasure to hear from president Moon that you would be available for a little while during my visit. And, I would like to personally thank you for making time in your busy schedule for my visit.


Please let me begin with my introduction.
I am currently an enrolled student in Chemical and Biological Engineering as well as Business Administration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who runs a small venture business with the support of President Moon. As a 26-year-old healthy Korean man, I've just discharged from the military service under obligation to protect the country.
The personal connection with president Moon was begun 3 years ago through a business item, 'People2', invested by him. This business item has been an issue with Korean SNS (Social Networking Service),the first networking system which established to connect and exchange the value of people at that time.
A mini-homepage of Cyworld is all the rage in Korea nowadays. I don't know if you have it, but it is obvious that this mini-homepage of Cyworld is an extraordinary sensation based on the fact that over 30 million people among the entire Korean population of 50 million have this mini-homepage even though excluding senior citizens and children.
The successful case of Cyworld was introduced as a representative case of SNS. in 'Information Systems Today: Managing in the Digital World, 3rd edition' published by Prentice Hall, an American textbook publisher, and already evaluated as the most innovative business model in the Wharton School and Frost&Sullivan. In my opinion, Cyworld is the result especially made by personal desire both to express themselves and to connect with each other among various factors of its success.
For that reason, the method I created was a KEYWORD after all my worries to change people's desire of expression into more practical ways on the guess that everyone has a small but precious value of their own. People2 service came out of my worries to form a network both by asking for such a value in person and, by extension, exchanging their own value through searching or browsing based on the assumption that it is possible to show their trivial value by a KEYWORD. At that time, this service should have been expected to be 'Post-Cyworld.'

It seems that my strong will and passion between a cofounder and me was highly evaluated by president Moon. At that time, I served in ROTC(Reserve Officers' Traning Corps) Unit in University , but my challenge made me give up my commission and pour all my scholarship of the mean time for this project (for this reason, I consequently became to serve the military as a soldier). The reason why I was able to get a great opportunity in spite of my shortage was because president Moon is the person who emphasizes a spirit of challenge and invests in 'SUCH A PERSON'.

I actually apologize for extensive introduction. ^^;;


The visit of Silicon Valley was my long-cherished desire. I was dreaming for this for a long time, and it would be a precious experience achieved narrowly at this point of my completion in the military. Although I am a new entrepreneur with lack of ability, your challenge and dream heard from president Moon encouraged me a lot and made me realize that I would be able to learn more lessons for the rest of my life through this opportunity.
The environment for Korean ventures is said to be poor. I would not want to blame the environment, but I am willing to feel and see both the hidden potentials and developed system of Silicon Valley that achieved numerous mythologies as a mecca of venture business. If possible, I would like to discuss about the environment of Silicon Valley in comparison with Korean environment.
I was full of admiration by hearing a lot about 'Soompi.com', reading so many articles in blog, and using it personally. In my opinion, it is not polite to mention about your project on my first e-mail, but, if I may, I would like to share my idea as well as to discuss with you in person as a citizen with many interests in globalization of Korean culture. Especially, it would be great to hear the story of Silicon Valley. Needless to say, you are already so famous with great reputation in Korea. ^^*

“I just love to achieve together with people. Even though there are entirely 2 people only, I believe that I will enjoy a sense of accomplishment at the end of this challenge if Scoompi grows up properly. I don't want to do boring, dull, and repeating work.” - Joyce Kim
- from Blog Posting written by president Moon

It is my desire to visit successful companies by myself, such as 'Mahalo.com'. In addition, I would like to visit other organizations with great reputation even without an appointment or a plan if it's possible.

During my stay in San Francisco from February 7th to 13th, I would run to San Jose to see you. Because of my desire to deeply feel for Silicone Valley as much as possible, my schedule is flexible enough.
I would not ask you for a broad range of your valuable time, yet please provide me a short amount of your schedule to discuss the regarding subject. Therefore, I am so happy that my dream to just meet you in person would come true since I first met you through president Moon's blog.

I would look forward to hear from you.
Wish you have a great night, ma'am.

Sincerely yours,
Frank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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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lecommunication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음성통화가 아닌 사회적인 미디어로 발전하고 있으며, 사용자들의 행동 패턴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무선인터넷의 중심에는 고객이 아닌 이통사가 군림하였으며, 이로 인해 고객들에게 이통사들의 '공공의 적'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선인터넷의 발전은 Web 2.0의 철학과 만나 이통사들에게 개방과 공유를 요구했으며, 고객들은 이통사의 Brand 보다는 개개인의 Relation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통사들은 이러한 사용자들의 요구에 귀기울이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새로운 상품을 팔기에 급급했고, 대부분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이통사 중심의 무선인터넷에 iPhone의 등장으로 게임의 법칙이 바뀌게 되고, 이통사들의 헤게모니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 결과로 현재 무선인터넷 시장을 리드하는 것은 이통사가 아니라 새로운 신규 단말과 제조사 브랜드, 그리고 앱스토어를 중심으로 하는 모바일앱이라고 할 수 있다.

 - 2009, Berlin Telco summit



 아이폰이 전세계 모바일 시장에 기여한 가장 큰 공은 이통사 중심의 폐쇄적인 모바일 생태계를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이른바 이통사가 수십년간 둘러쳐 온 `월드 가든'(Walled Garden)이란 장막을 허물어 소비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가 스스로 모바일 생태계를 거닐 수 있도록 길을 연 것이다.

 아직도 세계 모든 이통사들은 자신들이 구축한 네트워크(망)에서 자신들이 공급하는 솔루션과 애플리케이션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모바일 시장은 이통사의 울타리 안에서만 의미가 있고, 이를 거부하면 시장 진입 자체가 막혀있다. 이런 폐쇄성은 불합리한 무선인터넷 요금체계와 제약적인 콘텐츠 및 서비스를 낳았고, 결국 네트워크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무선인터넷 산업은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암울한 현실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애플 아이폰은 앱스토어(온라인 애플리케이션 장터)를 통해 사용자들이 이통사 입김 없이 스스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앱스토어에 등록된 애플리케이션은 10만건이 넘고 하루 다운로드 수도 수십만건에 이른다. 이런 앱스토어에 힘입어 아이폰은 지난 2007년 출시이래 5800만대가 판매됐으며, 아이폰에 열광하는 `아이포니악'(iPhoniac)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아이폰의 등장은 또 이통사의 혈관인 이통망 대신 다른 무선망(와이파이 등)을 통해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아이폰의 막강한 콘텐츠 경쟁력과 결합하면서 폭발적인 무선데이터 트래픽을 일으키고 있다.

 '무선인터넷'이 활성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 '이통사의 위기'를 말하는 것은 매우 모순적이다. 하지만 벌써 미국에서는 아이폰이 '네트워크 잡아먹는 괴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통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AT&T 는 누구보다도 먼저 아이폰을 도입했고, 그에 따라 신규가입자 유치에는 어느정도 성공 (현재 AT&T 가입자중 아이폰 이용자의 비율은 7.5%) 했지만, 그것들에 대한 보조금 비용은 물론 이제 와서 보니 아이폰때문에 치러야 하는 네트워크 비용이 엄청난 압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아이폰을 가장 먼저 도입했고 가장 많은 아이폰 사용자 경험을 가지고 있는 AT&T가 호소했다.

 AT&T 가 누린 초기 효과를 보고 경쟁적으로 아이폰을 도입한 (그것도 애플에 상당한 부분을 양보하면서) 다른 이통사들도 이런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 무제한 정액제와 같은 요금을 함께 제공하지 않았다면 상대적으로 괜찮을수도 있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아이폰 사용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그런것에 준하는 무리한 요금상품을 제공했을 것이기에 비슷한 문제에 조만간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
미국에서는 아이폰 사용자에게 월 30달러의 데이터 요금에 무제한 용량을 허용하고있는 반면 KT에서는 정액제 개념으로 100메가, 500메가 용량을 다 쓰고 추가로 접속하면 KT에서 책정하고 있는 데이터요금이 추가로 부과된다.)

 한국에서도 그동안 음성통화 수익에 안주해왔던 이동통신 업체들이 애플의 아이폰에 자극받아 시장환경이 급변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생존의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SK텔레콤은 무선인터넷 서비스 활성화의 걸림돌 지적을 받아온 기득권 보호 장치를 모두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통해 음성통화 중심의 이동통신 시장을 무선인터넷 서비스 중심으로 바꾸고, 그 속에서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찾겠다는 것이다. 올해 새로 공급하는 이동통신 단말기 50종 가운데 15종을 스마트폰으로 채우고 이 가운데 13종가량을 안드로이드폰으로 낼 계획이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일반 휴대전화에도 무선랜(와이파이) 통신망 이용 기능을 넣기로 했다. 데이터통화료를 챙기기 위해 이동통신망을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게 하던 ‘네이트’를 무선랜에도 개방해, 네이트에 담긴 콘텐츠를 무선랜을 통해서도 내려받을 수 있게 하기로 했다.

 안드로이드폰은 삼성, 엘지, 팬택 등 국내 제조사들이 올해 수십종을 쏟아낼 계획이다. 이에 따라 운영체제, 앱스토어, 열성적 대기수요 등 여러 면에서 맞수인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의 한판 승부가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펼쳐질 전망이다. 경쟁 구도는 ‘아이폰 대 안드로이드 연합군’의 모습을 띠고 있다. 엘지전자와 삼성전자, 팬택 등이 안드로이드폰으로 스마트폰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이통사들도 ‘연합군’에 가세했기 때문이다.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국내에 도입된 외국산 스마트폰 하나가 좀처럼 변화하지 않던 한국의 이통시장 환경을 바꾸고 있는 현실이 무척이나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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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2010 새해가 밝았습니다.
 처음 군대에 입대할 때만 해도 여기저기서 장난처럼 '2010년이 오냐?!!!!!!' 라고 하던 그 새해가 드디어 밝았네요. ^^

 무역흑자도 사상 최대, 수출 규모도 세계 10위,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각자 힘차게 내딛고, 저 또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올 한해는 무척 희망찰 것 같습니다. 잠들어 있던 제 자신이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에요. 연말연시 하늘에서 들이붓듯 떨어지는 악마의 하얀 똥가루조차 로맨틱하게 느껴집니다.

 군대는 저에게 현명하게 기다리는 법과,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과, 뜨겁게 사랑하는 법과 미래를 위한 참을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솔직히 다시 하라면 결코 돌이키고 싶지 않지만, 2년이란 세월이 저에게 준 것은 무의미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

 정말 지독하게 사랑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와 무관하게 참 많이 배워갑니다. 언젠가 삶에서 사랑으로 인해 잠깐의 방황을 겪으리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군대에서 맞게되어 더 진하게 성숙했습니다. 지난 2년을 결코 후회하진 않습니다. 메말랐던 저에게 진정한 사랑이 얼마나 가치있고 중요한 것인지 알게해준 그 사람과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하늘에 계신 그 분께도요...

 이젠 그 지독했던 용기와 희망을 다시 저의 꿈과 열망으로 옮기겠습니다. 처절해지고 철저해지겠습니다. 다시 한번 뜨겁게 달려보겠습니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지금 이 시간을 회고할 때, 어느 때라도 망각되는 기억이 없게끔 열심히 살겠습니다.

 모두들 새해 바라시는 일들 빠뜨림 없이 모두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




<Military Autobiograph>

3군 사령부 내 직할부대인 3화학중대에서 작전통제병으로 근무.

 군대도 하나의 조직인만큼 행정업무에 있어서 인사, 군수, 정훈, 정보, 보안, 수송, 작전 등 많은 파트로 나눠져 있는데, 제가 맡았던 파트는 정보, 보안, 작전, 정훈 교육 분야 였습니다. 회사로 따지면 일종의 경영전략실인 셈이죠. 다른 모든 지원파트를 아우르고, 각각의 파트에 대해서도 지시를 해야하는 부서인데다 저희 부대에 제 보직이 하나밖에 없어서 한동안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군대에서 하는 말로 펜대 굴리면 여럿 다치는 보직이었죠.

 원래 제가 맡은 파트는 간부 3명에 병사 4명이서 운용되는 부서인데 부대 여건상 1명의 간부와 저, 이렇게 두명이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수시로 야근에, 너무나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었지만, 다행히도 호흡이 잘 맞아 계획적이고 의욕적으로 일을 처리해 한번도 누락되거나 딜레이 된 적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3군 전체를 관할하는 사령부 화학과 지원병력으로 발탁이 되어 2009년 국감자료를 비롯 수많은 공문과 영문으로 된 보고자료 등을 작성했습니다. KR/FE, UFG 훈련 등 큰 훈련 때는 미 증원 군단 특임요원들과 합동 작전을 하여 미군으로 부터 Certificate를 수료하였습니다. 2010년에는 협조회의를 위해 방한한 미군 지휘부 전속 통역병으로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전문적인 통역장교들 또한 있었지만, 작전과 회의 내용에 대해 전문적인 내용을 아는 통역인력이 없었고 과거 Vienna Model UN에 참가했던 경력을 인정받아 부족하지만 제가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연을 통해 사령부 내 미군들과 영어회화 동아리를 만들어 매주 수요일마다  회화 스터디를 하였고 한달에 한번은 미군 부대를 직접 방문해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였습니다.

 3군 화학과 뿐만 아니라 사령부 부관과, 작전과 등 다른 부서에서도 의미있는 지원업무를 다수 수행하였습니다. 특히 2009년 용인시내 참전용사 분들을 찾아 그 분들께 훈장을 수여해드린 임무는 매우 뜻깊은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보직이 컴퓨터와 친한데다, 입대 전 사회경험으로 인해 부대내에서 PC, 네트워크, 전산장비에 대한 모든 상황조치를 도맡아 하였습니다. 물론 제가 잘 모르는 부분도 있었으나 군인정신으로 밤새 공부해서 모두 고쳐놓곤 했습니다.

 업무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 관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위로는 처, 부별 장군님, 아래로는 이등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과 함께하며 예전엔 미처 몰랐던 예의와 인내를 배웠습니다. 특히 항상 힘들어하는 행정병들의 분대장으로써, 본부소대장 없이 병사끼리 뭉쳐 고비마다 잘 해결해 나가려 힘을 모았습니다. 계급사회의 인습을 없애기 위해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중대본부 소대원들이 모두 모여 한주간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아쉬웠던 부분, 오해가 있었던 부분, 화가났던 부분에 대해 계급장 떼 놓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저의 첫 소대장님이 제게 주신 '군대에서 남는 가장 큰 것은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항상 가슴에 담고 생활하였습니다.

 군생활 간 야간 경계작전과 야근 등으로 바쁜 시간을 쪼개 PCT 자격증에 도전하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두 번의 토익시험을 보았으며, 틈틈이 블로그를 통해 세상과의 교류를 잊지 않았습니다. 매주 2~3통의 손편지로 지인들과의 인연도 소중히 하였으며, 특별히 제가 가장 사랑했던 한 친구를 위해 열정을 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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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우리 집은 항상 통화중이었다. 그것 때문에 열 받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참다못해 집으로 달려온 아버지의 호통이 몰아쳐야 간신히 '통화 중'이 해제됐다. 내가 PC 통신에 빠진 탓이었따. '띠띠띠띠띠띠, 뚜루루, 삐이이익, 삑, 삐이이익' 이 같은 전자음만 들어도 가슴 떨리던 시절이었다. 데이콤에서 운영하던 천리안으로 시작된 나의 첫 PC 통신 입문이 디지털 소통 인생의 시작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나우누리를 시작했다. 그 속에서는 많은 일이 이루어졌다. 동아리방 공책은 게시판으로 대체되고 채팅을 새로운 만남의 장이 됐다. 사람들은 자기 방에 앉아서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따. 디스켓을 통하지 않고도 공개 자료실에서 바로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었다. 영화 <접속>과 같은 새로운 판타지가 생겼다. 얼굴도 모르는 여인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얼굴을 보겠다고 덤볐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 나우누리는 패션 시장에도 영향을 끼쳤다. 나우누리의 '패션 게시판'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강남 스트리트 패션의 메카였다. 최신 트랜드는 물론, 유명 매장의 재고 상황까지 공유했다. 패션장터를 통해 수많은 중고 물품이 거래됐다. 이는 단편적인 예다.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오프라인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한 인터넷은 온라인의 영역을  폭발적으로 확장했다. PC통신은 저물고 웹 사이트가 게시판을, 네오위즈의 '세이클럽'이 채팅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전화번호와 함께 '한메일' 혹은 '핫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이 시기에 급부상한 것이 바로 프리챌이다. 프리챌은 1인 미디어의 시대를 열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앨범과 일기장이 등장했도, 커뮤니티마다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기 바빴다. 프리챌은 다음 카페와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를 장악했다. 자신의 공간에만 공을 들이면 그만이었고, 열심히 다른 곳을 열람하면 끝이었다. 이는 집단에서 개인으로 중심이 이동한, 소통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그 아성이 무너진 것은 프리챌이 유료화를 선언하면서부터다. 이를 계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프리챌을 떠났다. 그들에게 새 보금자리를 제공한 것은 싸이월드였다. 아기자기한 레이아웃과 간편한 인터페이스는 온라인의 '온'자도 모르는 여성들까지 미니홈피에 빠뜨렸다. 싸이월드의 성공은 폭발에 가까웠다. 그 폭발은 지금까지도 전 국민을 '싸이하게' 만들고 있다. 싸이월드의 대중화는 오히려 반대급부적인 디지털 소통의 다양성을 추구하게 했따. 싸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좀 더 자유도가 보장된 블로그를 선택했다. 블로그는 RSS라는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블로그의 게시물을 한 자리에서 구독할 수도 있었다. 디지털 소통을 블로그를 통해 미디어의 형태와 더욱 가까워졌다.

 최근에 들어 전 세계적으로 소통을 이끄는 것은 마이크로블로그라고 부르는 트위터다. 트위터는 이미 미디어를 앞질렀다. 중국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위구르 유혈사태 소식을 가장 빨리 알린 것은 어떤 미디어도 아닌 트위터였다. 미국 유학생이 자신의 트위터에 시위 소식을 기록했고, 반나절이 지난 다음에야 각종 외신을 통해 전파됐다. 이란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서도 트위터는 빛을 발했다. 트위터는 신속한 내부적 결속과 세계로의 소통 도구로 활용됐다. 이용자간의 친목 도모에 그치던 웹 사이트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미디어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SK Comms의 한 관계자는 이미 마이크로 블로깅은 싸이월드와 네이크온을 통해 이루어져왔다고 말한다. 미니홈피의 메인 소개 글과 네이트온 대화명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알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네이트온의 '미니클럽 프리톡' 기능은 한 줄의 글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여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이룰 수 있다. 새로운 인맥을 형성할 필요 없이, 기존 싸이월드와 네이트온의 인맥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싸이월드에 힘입어 성공한 네이트온을 보면 그 가능성에 꽤 신뢰가 간다.

 사실 세계적인 관점의 '소통의 변천사'는 앞서 기술한 내용과는 상이할지도 모른다. 트위터의 성공은 아직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약 2년 뒤에는 과연 소통의 패권을 누가 쥐고 있을까? 혹자는 구글 웨이브가 이른 시일 내 트위터, 페이스북을 제치고 소셜네트워킹의 선두자리에 오를 것이라고도 말한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디지털 소통의 프로세스는 점점 더 단순해지고 빨라지고 있고, 이는 곧 인간의 소통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천리안과 트위터의 간극이 바로 그 증거다. 그 속도를 계속 따라가지 못하면 어떤 매개체도 성공할 수 없다. 이는 우리 모두의 문제일 것이다.




 2개월 만에 다시 인터넷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대 인터넷 PC에 문제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덕분에 라우터와 모뎀, 게이트웨이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달 가량 독학으로 네트워크 디바이스와 씨름한 끝에 결국 원위치 시켰어요. ㅡㅡV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으며, 앞으로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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