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힘들었던 시절에 태경이 누나의 답메일은 나에게 무척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
[From Dae-Eop]
반갑습니다.
일찍 연락을 드렸어야 하는건데, 이렇게 늦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먼 곳에서도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EIC 내에서도 하태경씨 말씀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하태경씨를 칭찬하시더라구요.
이렇게 직접 메일을 보내게 되니 약간 긴장이 되기도 합니다. ^^;;
이번에 우리가 함께 추진할 일은 대한민국 대학생으로서 매우 큰 도전이 될 것입니다. 이번 사업은 대한민국 대학생 단체로서 최초로 진행되는 사업입니다. 시중에 LG 글로벌 챌린저나 잡코리아 글로벌 프론티어 등의 많은 탐방 프로그램이 있지만, 이렇게 하나의 주제에, 이렇게 오랜시간동안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 진행되는 사업은 유일합니다. 또한 스폰에서부터 홍보까지 모두 저희 탐방단이 직접 만들어가는 활동으로, 단지 대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이라기 보단 하나의 사업에 가깝습니다.
추후에 차차 말씀 드리겠지만, 전경련과 국제경영원 측으로부터 많은 압박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껏 컨택했던 기업들로부터도 수많은 거절과 무시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결국 그 수많은 도전을 하나하나 정복해 가고 있습니다.
국제사업부가 제 2차 국제사업을 기획한지 어언 3개월이 다 되어 갑니다.
처음으로 이번 사업을 기획할 때는 전경련의 지원을 뒤에 업고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냉혹하더군요.
3개월 동안 국제사업부 부원들은 일주일에 평균 2번씩 모임을 가지고, 평균 1개의 기획서를 써냈으며, 수많은 메일과 전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저 또한 이번에 추진하는 일이 제 대학생활을 통틀어 가장 스트레스 받고 가장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일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도, 심지어는 시험치기 직전까지 기업이나 기관에서 연락이 오면 초 긴장상태로 돌입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통화를 해야했습니다. 게다가 아무래도 대학생의 신분이다 보니, 차가운 거절과 무시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보다 확고합니다.
예전에 EIC 이름으로 독일에 BASF를 탐방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제가 Head of delegates 였는데요, 정말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제가 한 단체의 대표로서 그 분들과 기획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행복했습니다. 어디서든 Mr.KANG으로 저를 찾아주었고, 그 인연으로 내년에는 독일에 인턴을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BASF 회장님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한국에서 찾아온 대학생들을 통하여 외국계 기업에선 한국의 대학생 전체를 평가한다고..
저는 이러한 기쁨과 책임을 이번 사업을 같이 추진하는 모든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1차와는 다르게 수많은 기업과 기관들을 선정하였구요. 탐방단 한분도 빠짐없이 맡으신 기관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도록 할 계획입니다.
어느 단체에 컨택을 하든, 담당자는 EIC, 아니 대한민국 대학생의 대표로서 방문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 2차 국제탐방엔 수많은 경력과 인맥,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계신 분들과 함께 합니다.
그리고 특히 그 중에 하태경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본탐방 일정은 1월 16일 부터 3박 4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만, 그전에 한국에서 일본 기관과의 컨택을 완료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태경씨의 지원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앞으로 자주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월달이면 기말고사 기간으로 많이 바쁘실텐데,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어서 뵙고 싶네요 *^^*
[To Dae-Eop]
메일 잘 받았습니다.
대업군의 장황한 글과 노고에 한참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답장이 이렇게 늦어지게 되었네요.
지금 하는 국제사업부의 일이 비록 일생일대 가장 힘들지라도 그건 대업군이 느끼고 있는 압박감의 두배..아니 그 이상의 결실을 맺어 차후 대업군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것이고 그 이상의 것을 얻을 것입니다.
어떠한 고비를 겪게 되었을 때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처하고 난 후 자신은 자기도 모르게 단단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겐 수많은 기로와 선택의 고비..그리고 극복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를 끌어내 봅니다.
2002년 한국에선 월드컵으로 전국이 들떠있을때 전 혼자 잉카의 배꼽 마츄피츄행을 나섰습니다. 가난한 학생의 홀로 남미 여행은 너무나도 위험하고 무모한 도전이었지요.
무지한 탓에 버스를 타고 해발 3천미터 이상을 오르는 도중 전 고산병에 시달리게 되었답니다. 말로만 듣던 고산병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고 가슴이 탁 막히고 숨을 쉴 수 없고 머리가 띵한..그런 것이었습니다. 내 눈에선 계속 눈물이 흘러나왔고 나는 어쩌면 이게 내 인생의 끝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에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처럼 내가 그동안 저지른 못된 행동들..용서해주세요..엄마,,아빠..건강하세요..그러기를 서너시간이 흘렀을까..
안개 자욱한 산중턱 휴게소에 들렀을때..나는 정상으로 돌아왔지요.그리고 그때 제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돌아갈까? 하! 온갖생각이 혼미한 제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그 때 전 제 자아와 싸웠습니다. 그리고 이겼다고 하기엔 좀 표현이 어색하지만 어쨌든 마츄피츄도 보고 꾸스꼬의 인티라이미란 축제도 보고 다양한 여행객들 그리고 원주민들을 접하며 색다른 시야를 갖게 되었지요.
그냥 저의 경험입니다. 그게 20살 자아와의 싸움의 첫 경험이 되었지요.
나는 대업군이 참 당차고 용감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일을 했더군요. 그리고 일의 진행 또한 열성적으로 그리고 순조롭게 이끌어 가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라고 했죠?
그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결국엔 가장 요긴한 해소제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더 당신을 강하게 키워줄 것입니다.
그러니 쓴 고배를 몇 천번 마실지언정 포기하지는 마십시오.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기대를 걸고
이번 사업 열심히 해봐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