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누구나 두렵고 불안하다. 화려하고자 하는 욕망과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믿고 싶지만, 마주한 현실은 숨막히는 평범함이다.

 현실을 직시하라, 스스로를 위로하지 말고, 남에게 받은 위로를 믿지 마라. 결국은 자신의 몫일 뿐이다.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믿는다면 그를 증명하기 위한 특별한 무대를 준비하고, 그 무대를 위해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생각하기보다는, 계산하기보다는 먼저 몸으로 부딪히며 그 초라함을 이겨나간다.

 

‘자신을 좇으라’


 남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은 늘 뒤쳐질 수 밖에 없다. 내가 개척한 길은 누군가가 따라오게 되어있다. 끊임없이 앞 사람의 흔적을 확인하고, 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가는 안전한 길에서는 선두가 될 수 없다.

 

 이 땅에서 세뇌받은 행복을 스스로의 것이라 믿고 달려가다가 후회와 미련을 안고 사는 것보다는, 조금 늦게 가더라도 자신의 삶을 개척해 볼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에게 주어보는 것은 어떨까? 무엇인 그렇게 급한가? 사실 돌아보면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위기와 다급함을 느끼며 달릴 정도는 아니지 않았는가? 만약 내가 쉬어 가는 법을 몰랐다면 앞서 가는 법도 몰랐을 것이다. 담금질 할 줄 아는 사람이 스스로를 화려하게 즐길 줄도 아는 법이다.

 

 아직은 가진 것이 없고, 아는 것이 없고, 경험한 것이 없어서 현명할 수 없는 스물 네살의 젊은이가, 이 좁은 땅에서 좁은 시야고 매겨진 평가에 연연하며 자신의 미래를 성급히 규정짓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진보할 수 있고,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그 길을 찾아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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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항상 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음지는 내가 정한다는 것이다. 그 장소와 시간도 내가 정한다. 나는 계획된 때에 초라해질 것이고, 의도한 때에 무대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가 정한 때에 내려올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인생은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두운 때가 있고, 빛나는 때가 있다. 절망도 있고, 행복도 있다. 주연일 때도 있고 엑스트라일 때도 있다. 나의 절망은 외부의 환경이나 타인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그런 것에 의한 절망은 힘든 것을 넘어서 비참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나의 행복 또한 ‘살다 보니 좋은 날도 있네’ 하는 식이어서는 절대 안된다. 그러한 행복은 시한부일 뿐이다.

 

 내 삶의 주체는 나고, 내가 빠진 행복과 불행은 그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다.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거라지만, 난 내 의지대로 살아갈 것이다.

 

 자신의 목표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만족하여 그 쯤에서 즐기고자 하는 욕구를 잘 제어해야 한다. 자신이 서고 싶었던 무대에 채 올라와 보지도 못하고 무대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내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 또한 나의 의지대로 행할 것이다.

 

 나는 항상 도전하는 쪽을 선택한다. 내게 확실한 것은 아직 젊다는 것이고, 이렇게 멈춰 버리면 그 멈춘 모습에 갇혀 살아갈 앞날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는 것뿐이다. 아무리 고생스럽다 해도, 스스로 결말지어 버린 뻔한 인생을 반복해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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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능력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욕심 많고 결점 많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특별히 머리가 뛰어나지도 않고 외모가 출중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노래를 잘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다시 말해 어느 하나도 타고난 것이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잘난 것 하나 없이 살아가기에는 욕심이 너무 많다.

 만약 당신이 특별한 사람들의 박수 부대로 살아가는 것에 민감하지 않다면 사는 것이 그리 힘들힘들 않을 테니 스스로를 피곤하게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난 욕심이 많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과에 속한다.

 

 당신은 지금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이유가 분명히 있는가? 기껏해야 ‘이런 거나 하고 있을 내가 아니지만 잠시 동안 하고 있을 뿐이야’ 라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것이 제일 한심한 이유다. 그것은 회피의 이유지 발전의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당신은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술이나 먹고 있지는 않은가?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일단 최고가 되겠다는 자세로 그 일에 임한다면 분명히 또 다른 기회로 연결된다. 그것이 사람 사는 이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눈 앞의 이익을 떠나 항상 길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언제 어떤 일이 요구될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항상 긴장해야 한다.

 만약 지금 당신이 24시간 중에 적당히 하는 자세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버리는게 낫다. 함부로 무대에 서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언하건데 그 사람을 위한 무대는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

 

 목표와 수단이 주어지면 그 다음은 미련함이다. 목표를 향해 가는 미련함.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 단호한 미련함. 섣부른 판단이나 남들과의 비교는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의심케 하고 스스로를 지치게 할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과 나를 너무 많이 비교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아킬레스 건이다. 사실, 우리는 비교하고 비교 당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아마도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을 보면, 계획을 세우고 결과를 손에 쥐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획의 결과보다 계획을 세우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만 다하면 그 뿐인가?


 그렇다면 계획과 꿈의 차이는 무엇인가? 얻기 쉬운 것은 계획이고, 얻기 어려운 것은 꿈인가? 무엇이 얻기 쉽고 무엇이 얻기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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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일류대 진학을 꿈꾸는가? 외국계 회사에 취직하기를 원하는가? 부자로 살고 싶은가? 아니면 아주 철학적이고 고상한 삶을 꿈꾸는가? 정식한 삶을 추구하는가? 소박한 행복을 이야기 하는가? 그도 저도 아니면 마땅히 꿈이라고 부를 만한 것 조차도 없는가?

 

 나의 꿈은 죽을 때까지 지금 이 열정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꿈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유치하기도 하고 허황되기도 한…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야기 할 때 이미 타협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는 꿈을 이룰 수가 없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 바로 타인과의 비교이다. 자꾸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멀리 갈 수 없다.

 

 ‘어? 저 친구 학교 다닐 때는 나 보다 못했는데 대기업 들어갔어? 에잇, 나도 당장 취직부터 해야겠다.’

 

 ‘어? 저 친구 도서관에서 죽치고 앉아 있더니, 미국 주립대에 유학 간다고? 나도 지금부터 유학 준비 해야겠다.’

 

 이런 자세로는 자신의 꿈을 지킬 수 없다. 꿈을 향한 자신의 출발은 남들과 달라야 한다. 나이에 맞는 꿈을, 상황에 맞는 꿈을, 남들이 알아주는 꿈을 꾸는 것은 자신의 꿈이 아니다. 남들과 똑같은 모습으로는 나의 꿈을 이룰 수 없다. 특별히 잘난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면 어디서부터 출발할 것인가? 나는 자신만의 특별한 꿈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남들과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지켜 나가는 것이 나를 남과 다르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똑 같은 목표를 갖고 고만고만한 능력으로 모두가 덤비는 세상에서, 별반 다를 게 없는 당신까지 가세하여 무얼 얻겠다는 것인가?

 

 난 내 자신의 특별함을 믿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단지 증명할 길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눈에 보이는 매력 한가지를 갖고자 했다. 나머지 모든 결점을 덮을 수 있을 정도의 힘 말이다. 일단 하나라도 남과 차별화 되는 경쟁력이 생기면 반은 성공할 것이나 다름 없다. 적어도 출발점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지는 알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이 바로 나의 꿈이자 나의 의지다.

 

 각도를 조금만 틀어 세상을 보라. 세상에는 그 끝없이 길기만 한 줄 끝에 서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음이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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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자신을 돌아 보았을 때, 과연 도전이라는 이름을 달아줄 수 있었던 적은 몇 번이나 될까. 대학 입시처럼 강요된 도전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도전, 자기 인생의 변화를 불러왔던 도전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도전이란, 너무나 추상적이고 멀리 있다. 마치 내 것이 아닌 듯 어색하다. 내가 아는 도전은 그냥 맨 땅에 헤딩하는 것이다. 내게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나 자신감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더 이상 선택의 길이 없었기에 고민의 여지도 없는 그런 도전 말이다.

 크든 작든 도전의 시작은 스스로를 벼랑으로 몰아넣을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닥치면 다 해낸다. 그 극단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극단으로 몰고 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을 확인해 볼 기회란 영원히 없다.

 내 현재 위치에 더 이상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았을 때, 그때가 도전할 기회이다. 그렇지 않고 돌아올 여지를 남겨두고 떠난다면 반드시 언젠가 빈손을 털털거리며 제 자리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돌아와서 그럭저럭 안주할 공간이 있는데 누가 유혹을 받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도전할 때에는 반드시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당신은 평범함 속에 묻혀 살아갈 남은 인생이 더 힘든가? 아니면 혼자 허덕이며 힘겹게 버텨내야 하는 외로움이 더 힘든가?

 

 가끔, 당장 결과가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쌓아가는 것이 멀리 갈 수 있는 자세이다. 설사 그것이, 내가 아직은 확신할 수 없고, 결국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이 된다 할지라도 그 노력에 대해서만큼은 어떤 식의 대가라도 주어진다.

 

 상당히 뻔뻔스러운, 겁 없고도 무모한 자세 덕분에 나는 아주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됐고, 그 결과 인생의 방향마저 바뀌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 신조는 맨땅에 헤딩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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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내게 같이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말하고 무난한 성격을 가르치지만, 한편으론 평범함을 가장한 초라함도 강요한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것인가, 그냥 이대로 묻혀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는다.

 착하다는 말을 칭찬으로 알고 살며 뒤통수를 맞느니, 차라리 정으로 쪼임을 당하는 모난 돌이 낫지 않은가? 착하고 무난한 아들로, 그렇고 그런 학생으로 그리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간다면 그 뒷감당은 순전히 내 몫이다. 표출하지 못한 내 인생에 대한 미련과 그 후회 까지도…

 

스물 네살, 무언가 새로운 꿈을 꾸기에는 부담스러우면서도 그렇다고 현재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에도 미련이 남는 나이이다.
 

 가끔 나는 현명하다는 것과 똑똑하다는 것의 차이점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은 똑똑하기는 하나 현명하지 않다는 정의를 내린다. 내가 아는 똑똑함은 머리이고 현명함을 지혜이다. 만약 내가 현명했더라면 처음부터 무모하고 보장되지 않은 사업은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명하다는 것과 똑똑하다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 현명한 사람은 투자의 결과의 손익 계산서로 움직이기 때문에 험난한 인생으로 말려들어가지 않는다. 또한 무리하게 일을 진행시키지도 않는다. 반면 똑똑한 사람은 목표 지점을 향해 가는 길을 잘 찾아낸다. 그리고 그 결과만을 보고 간다. 어디쯤에서 멈춰야 하는지도 모른 채 계속 앞만 보고 가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보다 인생이 고달파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자신은 남과의 비교에 민감한 사람인가? 또한 순간순간 자신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인가? 적어도 항상 중간 이상은 되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다.

 만약 당신이 무모하고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할 배짱이 있거나, 그래서 한 번이라도 다수의 가치관이나 판단에 어긋나 본 적이 있음에도 어찌됐건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는다면 당신은 똑똑할 가능성이 높다.

 현명한 사람은 결코 화려한 출발 따위를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범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 비교라는 것은 끝이 없다. 자신의 비교 대상을 엉뚱한 곳에서 찾게 된다면 그건 정말 곤란한 일이다. 갑자기 유명인이 되어 나타난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지 마라.

 아직은 증명해 보이지 못한 자신을 믿는 사람들, 현명하기 보다는 똑똑함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소위 야망이 있다거나 욕심이 큰 사람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서태지 노래 중에 [환상 속에 그대] 라는 노래가 있다.

 

그대의 환상/ 그대는 마음만 대단하다/ 그 마음은 위험하다/ 자신은 오직 잘 될 거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모습은 무엇일까/ 그대는 방 한 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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