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극히 평범한, 아니 오히려 조금은 뒤떨어지는(?) 18-24 세대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어렸을 적,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 고등학교 때 나는 온라인 매체와는 전혀 친숙하지 않은 인간이었다. 중학교때 까지 사용했던 아버지의 16비트 현대 컴퓨터, 70년대 후반 부터 집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것이었으니, 당대 한국 기술력의 첨단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검은색 바탕에 초록빛의 깜빡이는 커서...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컴퓨터라는 놈으로 했던 것은 지금까지도 너무나 친숙한 '너구리'... 당시에는 이름도 너구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여하튼, 수년 동안 한 게임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끝판을 깨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사실 난 스타크래프트도 그리 잘 하지 못한다. 치트키 없으면 재미가 없더라... ㅡㅡ;;)
중학교 2학년때 '나진 컴퓨터'를 구입했다. 디지털 디바이스에 굉장히 조예가 깊었던(당시 친구들 사이에선 '컴퓨터 박사'라 불리웠던) 친구가 몇날 며칠을 고생하다 골라준 컴퓨터라 처음부터 기대가 너무 컸다. 당시 한창 유행했던 대우, 삼보, 삼성 컴퓨터가 아니라 영남 지방의 향토 기업인 나진 컴퓨터를 구입한 이유도 단 한가지, 서비스로 끼워 주는게 많아서 였다. 여하튼 그 놈의 컴퓨터는 정말 뽕을 뽑을만큼 뽑았다. 컬러 화면이 너무 신기했던 나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적색경보'에서부터 시작해 오만 잡스러운 게임을 몽땅 구입하기 시작했고, 시장 통 구석에 비밀스러운 '씨디 깡' 집에 가서 그 당시에 출시된 거의 모든 게임을 가짜 씨디에 구워서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그 시절 모은 가짜 씨디가 수북히 쌓여있다. 압축 방식이 'Ghost' 였던가??
3학년이 되어서야 컴퓨터 통신이란걸 접하게 되었다. 당시 여러가지 서비스 들이 있었는데, 내가 이용했던건 '천리안' 근데 그 마저도 동네가 후져서 속도가 엄청나게 느렸었다. 심지어 채팅 창에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는데, 상대방이 말이 없다면서 나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열 받아서 컴퓨터 채팅이란건 제쳐두고 한창 유행이던 'MAX'로 허기를 달랬다. 내가 기존에 구축하고 있던 인맥이 아닌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던 시기도 바로 그때부터 였던것 같다. 비록 'MAX'라는 놈과 함께이긴 했지만...
고등학생이 되지 드디어 광케이블이란 놈이 들어왔다. 당시 효용성을 이해하지 못하시던 부모님을 친구들 다 동원해서 힘겹게 설득하고, 라우터 대여비 무료와 3개월 무료 이용권과 함께 '두루넷'을 집으로 모셨다. 그 마저도 쉽지 않았던게, 우리 동네는 원래 광케이블이 들어오지 못하는 동네였단다. 지금에야 전국 산골 구석에도 광케이블이 들어가지만 당시엔 판자촌이 즐비했던, 그래서 인구밀도가 높았던 우리 동네엔 인터넷 이용 인구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광케이블이 설치되면서 내 삶은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당시 한창 유행했던 '세이클럽'과 '다모임'도 나의 디지털 라이프의 변혁에 큰 역할을 했다. 아직까지도 대구 지방에 내려가면 많은 이들이 '세이클럽' 타키를 이용한다. 나는 세이클럽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했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에 큰 희열을 느꼈다. 게다가 나를 모르니 욕을 하든 음담패설을 하든 알게 뭐야... 하지만 다모임은 달랐다. 졸업 후 한번도 보지 못했던 국민학교 동창들의 사소한 실수, 예를들어 누구랑 사겼다가 깨졌다더라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친구 중학교 가니까 입이 험해졌더라.. 아무개랑 채팅하면 욕을 손가락에 달고 살더라.. 에 이르기 까지 학연으로 이어진 끈끈한 네트워크에서 한번 삐긋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이미지가 되어 버리곤 했다. 나는 그게 두려워 다모임을 활발하게 이용하지 않았다.
수능이 가까워지자 망할놈의 '포트리스' 가 등장했다. 당시 대구에서도 뒤떨어지는 우리 학교는 '물량전만이 살길이다' 라는 모토하에 매일 밤 12시까지 학교에 잡아두고 그게 모자라 학원을 보내 놓고선 새벽 6시까지 등교 원칙이 철저했다. 주말은 물론 없었고, 하루에 부모님 얼굴 볼 시간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처절한 상황에서 원래 고개가 빳빳히 쳐 들리는 법, 학교 뒷문에 나 있는 개구멍을 통해 당구장, PC방, 노래방을 닳도록 드나들었다. 특히나 한창 열풍을 몰고온 '포트리스'의 인기는 대단해서 학교에서 랭킹이 성적순이 아니라 무슨별, 무슨 메달 인가로 매겨질 정도였다. 나도 정말 열심히 해서 '은달'까지 올라갔으나, 그건 순전히 '물량전'의 결과였지 절대로 내 실력이 향상된 것은 아니었다. 여하튼 나에겐 '포트리스' 게임 자체보다 더 재미있던게 있었으니, 바로 게임을 하면서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였다. '세이클럽'이 영문을 모르게 갑자기 죽어 버렸고, 재미있는 대화방은 전부다 '비공개'로 걸어 버리는 시점에서 같은 관심사와 대의명분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게임상의 채팅 공간은 새로운 놀이터였다. 특히나 같은 '클랜'으로 엮인 일련의 집단은 온, 오프에서 차별적인 모임을 갖는 등 상당히 독특하고 끈끈한 문화를 만들어 갔다. 난 당시 친했던 형, 누나 중 실명을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백마탄 환자'형 '칼이쓰마'형, '샤라방공주'누나 '칠공주넷째'누나 등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의 닉만 남았다.
대학에 처음 입학하고 나선 '사람이 그리웠다.' 지방에서 올라온 데다가, 그나마 같이 올라온 동향 사람들은 다들 자기들의 필드에서 눈부시게 활약을 하고 난 정말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혼자 내 던져진 것 같았다. 며칠을 방에서 채팅만 하다가 정말 '오타쿠'가 되 버릴까 심각한 고민 끝에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갔다. 동아리, 동호회, 모임, 세미나, 포럼을 닥치는 데로 참석하며 사람을 갈구했다. 하지만 의미없는 다수의 모임인 대형 집단은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영양가가 없었다. 차라리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며 친해지는 게 훨씬 생산적이었다. 그러다 한창 재미를 느꼈던 것이 온라인 클럽, 다음 까페나 싸이 클럽에서 내 관심사를 검색하며 밤 새도록 친구를 찾아 웹의 바다를 헤맸다. 그러다 간혹 마음이 맞는 친구가 생기면 바로 MSN 메신저로 등록, 하지만 그 마저도 한번 시들해진 관계는 회복하기 힘들었다. '채팅' 과 같이 익명성에 기반한 네트워크가 아니라. '메신저'처럼 기존 관계의 유지를 위한 통신기기가 아니라, '클럽'과 '까페'처럼 의미없는 다수와의 관계가 아닌 내가 원하는, 내가 필요로 하는,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이상계(웹)로 들어가는 이유는 누군가과 이어지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어짐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같은 친구를 평생 만나듯이 '통신'의 역할을 하는 매개체가 된다면 조금은 더 생명력이 길 수도 있겠다. 삐삐, 핸드폰, 메신저가 그러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통신 기기는 괄목할만한 기술적 진보다 뒷받침 되지 않고서야 그 헤게모니를 가져가기 힘들다. 다음 세상의 통신 수단은 무엇이 될까? 유비쿼터스? 유, 무선 통합 플랫폼? 나는 엔지니어임에도 불구하고 기술개발에 대해서는 그닥 친숙하지 않다.
그렇다면 '관리'의 개념이 아닌 새로운 '만남'의 헤게모니를 가져갈 수 있는 차세대 서비스가 무엇일까? 그러한 고민과 기대를 가지고 오늘도 피플투 가족들은 열띈 토론을 벌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