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경기가 어려운 시점에 '사직서'란 돌이킬 수 없는 일탈의 욕망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종종 꿈틀댄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면 그러한 것은 상상 그 이상으론 절대 발전할 수 없는 개꿈이자 마음의 토사물일 뿐이다.

 에드 머레이가 쓴 사직서 단어넣기 게임을 통해 우리의 비 현실적인 욕망을 달래보자. 단 절대로 당신 회사의 상사 심지어는 동료에게조차 발각되어서는 아니된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 거리낄게 없다면 지금부터 시작~

선호하는 신  께,

저는 오늘 동물 을 씻기다가 매우 형용사 한 무언가를 깨달았는데, 그 무언가라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은 부사 하고 잔인한 욕설같은 인칭대명사 이라는 것입니다.

어젯밤 일곱잔의 가장 안 좋아하는 독한 술 를 마시고 정치인 조차 얼굴이 벌겋게 될 정도로 많은 양의 마약 을 흡입한 후, 상황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진짜 그들 때문이지 절대 저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색깔 빛 개인적 관계에서 완전히 무력한 상태의 존재한 사람이며, 그러면서도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사탕의 종류 형용사 한 이 지구상의 누구와도 나누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모욕적인 형용사멸종된 동물 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 모두를 감정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이 먹던 전체요리 에 목이 막혀 형용사 한 죽음을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형용사 한 카타르시스 덕분에 내 기분은 웃는 감정 해 지는 동시에 이상할 정도로 외로워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매일 둘러싸여 있는 이 가축 떼들 과 마음이 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집의 한 부분 에서 매일매일 '울다'의 동의어 하는데 너무나 넌더리가 납니다. 어쩌면 제가 채소 한 움큼을 제 몸의 구멍 에 쑤셔 넣는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부모님 신체의 한 부분 속의 좌절을 볼 때, 내 가슴은 동사 하게 되고, 형제 자매의 이름 보다 차의 유형 을 부모님이 더 사랑하는 것이 부사 분명해집니다

어쩌면 나는 내 생식기날카로운 물체 로 찔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저는 명사 를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은 은유 로서, 그리고 이 삶에서 제가 속박되어 있는 욕설 한 모습의 예속 상태에 대한 '영원한'이라는 뜻의 형용사 한 상징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가장 형용사 한 지성을 가진 가축보다 더 통제력을 가지지도 못하면서도, 저는 직장동료들이 하는 모든 적극적 폭력행위 를 제 자신이 '그만OO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같은 방에 있는 누구 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저는 항상 그/그녀/그것과 강제적 성행위 를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동사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환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제발 저는 거기서 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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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가에 낙엽이 촘촘히 쌓여가는 바야흐로 10월,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 왔네요.

 아시다시피 사회에 있을 때 그 누구보다 자유방임적 인생관을 고수하던 저였기에, 오늘의 통제된 하루하루가 더없이 힘들고 고되지만, 오히려 이런 변화를 계기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1년 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조금은 발전된 모습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할 무렵, 우려했던데로 제 능력에 비해 턱없이 뻥튀기된 레퓨테이션이 마음속에서 '이건 무언가 잘못 된거야~'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이 싫은건 아니었으나, 이렇게 내실 없이 껍데기만 부풀려지다간 언젠간 한순간에 사상누곽처럼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늘 마음 한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었죠. 이제와 당시를 회상하면 차분히 생각해보니, 정말 위태로웠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주위에 많은 지인들이 지적해 주셨지만, 당시엔 마음깊이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의 불안과 거짓없이 세상앞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겠습니다.

 남자나이 25세면 삶의 방향과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할 시기라고들 합니다. 스물다섯이 되는 올해, 제가 가진건 새로이 지급받은 한 벌의 전투복과 한 켤레의 전투화 뿐입니다. 하지만 전 제가 가졌던 것들을 버림으로써, 다시금 젊음의 가장 큰 자산인 가능성과 노력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와 제가 하고 싶은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제가 되고 싶은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담대함과 삶의 주체성을 되 찾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빈주먹 뿐이지만, 고통과 다짐을 통해 새로운 용기를 얻었습니다. 인간은 고난과 역경이 주어지기에 또 다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또한 군대는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사회에서의 나태와 게으름을 쫓아버리고 스스로 계획한 것에 지속적이고 성실하게 집중할 수 있는 토양이 주어집니다. 건강을 물론이거니와 숱한 핑계 속에서 꾸준히 하지 못했던 독서도 실컷 하렵니다. 비록 몸은 좀 힘들지만, 정신적인 여유를 통해 Text화 된 것들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여 사회관계망, SNS, 창업, Web에 대한 기초적이고 깊이 있는 지식을 함양하겠습니다. 군대라는 통제된 특수한 상황에서 깊고, 차분하고, 여유있게 그림을 그리는 법을 연습하겠습니다. 저의 큰 목표는 이러한 의지와 계획이 2년이라는 시간동안 희석되고 변형되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리 될 것입니다. 사람은 어떠한 곳에 위치하든 자신이 하기에 따라 그 시간을 보석으로 만들 수도 있고 한낱 돌멩이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너무 강박적이지 않게, 그리고 너무 치열하지도 않게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여겨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생활하겠습니다. 건강하겠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이란, [Secret]과도 같은 마음가짐은 참 먹기 어려운 것임에 분명합니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큰 법, 끌어당김의 법칙을 통해 아무리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려해도, 막상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때의 실망감은 기대가 크고 확실할 수록 더 큰 법이죠. 하지만 기독교 교리 중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간절히 구하면 정확히 내가 바라는 바로 그것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어떠한 형태로 결국 나에게 주어진다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기회는 반드시 올테고, 언젠가는 갈망하는 것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지켜나가야 할 것은 믿음, 다시말해 바라는 것의 실상을 잊지않고 의심하지 않는거죠.

 전 10년 법칙을 믿습니다. 어떠한 분야에서도 10년 동안 딴 생각 하지 않고 몰입하게 된다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것을... Profesional이 되겠습니다. 무뎌지지 않겠습니다. 2년 뒤 제 모습에 대해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습니다. 전역 후, 0 base에서 다시 시작할 지언정, 조용히 숙성시켜, 진정한 pro의 내공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군대에 온 것은 순리입니다. 모든게 다 잘 될겁니다. 해야할 일은 해야되요.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제게 극복해야할, 돌파해야할 과제가 주어지기에 전 노력할 수 있고 저는 제 삶의 주체가 됩니다. 기다려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저의 복귀를 바라는 사람이 적어도 수십명은 될 수 있도록, 사회와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 이 곳을 통해 절 지켜봐 주십시오.

 언젠가는 IT업계가 번창하는 날이 다시 올 것입니다. 산업의 흥망성쇠는 모두 고유의 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젠 다시 위로 올라갈 때입니다. 멀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허리띠 졸라메고 죽도록 노력합시다. 응원하고 기도하겠습니다.

2년 뒤, 그 어느때 보다 많은 경쟁자들과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하고 치열한 분위기 속으로 뛰어들게 해 주십시오. 모두들 화이팅!

2008년의 가을, 그 초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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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y by 2.0

2008/03/1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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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투 블로그
에 게재된 나의 모습...

좀 쑥스럽긴 하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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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돌이님에요 ^^피플투의 시작부터 함께한, 그리고 피플투와는 아주 찐~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죠.

 현재 피플투의 잡일 담당자인 꿈돌이님. 일에 대한 그의 완벽주의적 처리와 센스는 많은 기자님들의 관심을 피플투에 모으게 했고, 꿈돌이님 덕분에 피플투가 가질 수 있었던 게 정말로 많아요. 너무나 든든하고 믿음직한 버팀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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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_- "마이너스의 손"을 가졌다는 것. 꿈돌이님의 손에는 뭔가 자기장이 있다거나 전파가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피플투 가족들의 진단-_-+ 꿈돌이님이 손을 대는 것 마다 정말 신기하게 고장이 나버린다는 거죠 ^^;


 
주란이 일찍 출근해 내 컴퓨터를 켜고 일을 하는 날은 컴퓨터가 너무너무 잘된답니다. 그런데.... 지각을 한다거나; 다른 이유로 꿈돌이님이 제 컴퓨터를 만지고 난 뒤엔-_-;;; 되던 인터넷이 안되고;; 컴퓨터가 너무너무 느려지는 거에요
!!!

 다른 가족들에게 꿈돌이님은 마이너스의 손을 가졌다고(그가 사용한 컴퓨터는 3개월동안 약 6번의 포멧을 거친 후 복구불능 상태가 되어 버려졌다죠-_-;;;) 반드시 컴퓨터에 락을 걸어두어야 한다고 일러주었죠+_+


 주란은 공포에 빠졌어요--;;

아무튼- 촛불을 꺼도 꼭;;; 하나만 꺼지고 뭔가 이상한-_- 미스테리의 꿈돌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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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돌이님의 자리는 바로 주란 옆이에요! 앉아서 컴퓨터를 하다가 뒤돌아보면 항상 주란의 의자에 옷을 걸쳐놓고 사라져 버린다거나(-_-+)  잠깐 방심한 틈에 사라져 버린 간식들과 태연하게 초콜릿을 먹고 있는 꿈돌이씨.(-_-+++)

 하지만~ 이런 모든 모습이 하나도 밉지 않은 이유는 꿈돌이님의 센스 덕분이 아닌가 싶어요~ 얼마전 둘리님이 피플투 런칭 기념으로 케이크를 사서 사무실에 오셨었어요. 사람들과 다 같이 촛불을 끄기도 전에 장식된 초콜릿을 쏙쏙 빼먹다 된통 혼난 꿈돌이님 ^^;;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는 모습에 감탄을 했더랬죠. 잠시후 다시 돌아와 보니 장식된 초콜릿 들이 모두 "드림카카오" 큐브 초콜릿으로 바뀌어 재 장식돼 있었어요. 어때! 하며 의기양양한 꿈돌이님의 센스에 감탄하며 ("역시 꿈돌이님이에요>_<") 자리로 돌아온 주란. 곧 그게 자신이 방금 사온 드림카카오 였다는 걸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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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꿈돌이님의 재밌는 모습에 익숙하던 사람들은 가끔 문득문득 놀란답니다. 그건 꿈돌이님이 일을 하는 모습을 접할때에요. 공적인 자리에서 너무나 완벽하고 빈틈없는 모습으로 대처하는 꿈돌이님. 그의 치밀함과 뭘 맡겨도 기대 이상으로 확실히 해내시는 모습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말없는 배움과 교훈을 안겨주죠
.

 편한 사람들과 있을때의 센스있고 적당히 빈틈있어 정이 가는 따스한 모습과, "믿음직한" 이란 말이 망설임 없이 나올만큼 신뢰가 가는 공적인 모습. 정말 멋있어요. 꿈돌이님, 피플투에게 꿈돌이님은 정말 든든한 버팀목 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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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 네트워크 피플투.

 조금만 알고나면 정말 간단하고 재미있는 놀이터에요. 하지만 '피플투에서 노는 방법'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은 그동안 흔히 접하던 첫 페이지와는 많이 다른 피플투의 얼굴만큼이나  이곳이 낯설고 어려울 수 있대요. 그래서!~
 성게군이 나타났습니다. 후후후.

 성게군은 피플투의 컨셉 설명과 간단한 사용설명서(피플투! 10초만에 배우기!)를 특유의 재치있는 말솜씨와 앙증맞은 그림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성게군의 비밀본부는(사실 비밀 정도는 아니에요^^;) 분당 깊숙히 숨겨져 있었어요.(사실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 그곳에 두목님과 함께 침투(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갔습니다-ㅅ-;) 해, 성게군을 만났죠. (아직도 성게군과 그 때 사진을 못찍은게 한이 됩니다...ㅠ_ㅠ;;)

 성게군에게 피플투를 소개했어요. 성게군 역시 너무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했답니다.
 그렇게, 성게군과 피플투는 파트너가 되었어요 ^^

 어제 막 성게군이 피플투를 이야기하는 카툰들이 도착했습니다. 훗-
 피플투 가족들과 프렌즈 친구들은 너무나 재미있게, 피플투에 대해 잘 설명된 이것을 보고 환호했답니다. 사실.... 정말 기대 많이하고 기다렸거든요 ^^

 성게군! 반가워요. 피플투에서 해피멘토가 되어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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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피플투 사무실 청소하는 날이에요. 매주 금요일! 아침 회의가 끝나고 직원들 모두 한주 동안 수고한 사무실을 위해~ 피플투 가족들 모두 열심히 쓸고 닦는 시간입니다. 오늘의 청소는 그동안 열심히 모은 쓰레기들을 큰~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리는 걸로 시작했습니다. 왠지 런칭 이후로 한층더 마른신듯한 두목님께서 커다란 봉투를 묶고 계시다 카메라를 발견하시고 씨익 웃어주셨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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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타군은 대걸레질을 담당했어요. 추석이 지나고 어디선가 머리를 깔끔하게 밀고 돌아오신날... 머리뒤에 생긴 엉성한 땜빵; 자국을 보며 피플투 가족들은 모두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기영이를 떠올렸지만 차마 말을 하지 못했어요. 오늘 저 모습을 보며 다시한번 말할까 하는 강한 충동에 휩싸인 주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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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도리님은 하얀 손걸레를 곱게 빨아 사무실 구석구석에 앉은 먼지를 닦아내고 계셨어요. 사무실 곳곳을 구슬땀을 흘리시며(심지어 이 추운 날씨에!) 열심히 닦고 계신 모습이 신데렐라와 오버랩되어 보였어요. 살짝 감동을 받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길이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다가갔죠. 앗.....갑자기 시니컬한 모습으로 돌변하셔서 "커튼!(어느날 제가 입고온 원피스를 보시더니 그 다음부턴 이렇게 부른십니다 ㅠ_ㅠ;) 너 왜 청소안해!! 카메라들고 놀지말고 얼른 청소하지 못해!-_-++" 하고 버럭 하셨어요. 사실 신데렐라의 심성 고약한 새언니 였던 거였어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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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도리님의 호통에 잽싸게 도망나와 '뭐하지~' 하며 슬슬 화장실로 걸어갔어요. 오호~ 스가님과 낭만쟁이씨가 열심히 화장실 청소를 하고 계셨습니다. 두분다 바지를 걷어올리시고 전설적인 메이커 삼선슬리퍼를 신고 왁스물로 바닥을 쓱쓱 닦아내고 계셨죠. 후후. 카메라를 스윽 들어올리자 두분다 "안돼~ 찍지마 ㅠㅠ 우린 안돼!" 하시며 얼굴을 절묘하게 가리셨답니다. 순간적인 스킬에 흠칫 놀라며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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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니 거의 청소는 마무리 단계였답니다. (오늘도 넘겼구나-ㅅ- 뺀질쟁이;;) 아까까지만 해도 배너를 정리하시는 꿈돌이님과 청소기를 담당하시는 푸헐부장님 곁에서 열심히 먼지를 털고 계시던 쇼콜라 대리님! 돌아오니 화분에 물을 주고 계셨습니다. 아리따운 뒷모습과 반짝이는 햇살, 싱그러운 화분이 어찌나 어울리던지요. IT업계에 빛나는 미모를 자랑하시는, (그리고 피플투프렌즈 남자친구들의 우러름을 한몸에 받으시는) 쇼콜라님이 바로 이분이세요.
(역시 마지막은 이렇게 상큼한 사진으로 해야 끝내는 기분도 나고=ㅅ=*훗-)

  역시, 청소를 하고나면 몸도 마음도 상쾌해 지는 거 같습니다.
깨끗한 모습으로 반겨줄 월요일의 사무실이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

post by 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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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포스팅 하네요 ㅡㅜ'

 10월 3일 수요일, 2Z 님과의 따듯한 만남을 가졌다. 올 블로그에서 SNS를 검색하면 유일한 키워드 챔피언이신 2Z님....
 대표님께서 '이 분 누구신지 좀 알아봐' 뭐 방법이 있나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수소문 하는 수 밖에...
 하지만 놀랍게도 2Z님은 올블로그와 각별한 관계에 계셨고, 이를 통해 극적인 이어짐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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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2Z님을 직접 만나뵙기 전에는 남자분인줄 알았다는.. =0=;;
 블로그의 포스팅도 그렇고, 검색 되는 결과에서도 그렇고 굉장히 섬세하고 부드러운 남자(?) 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신촌 독다방 앞에서 핸드폰을 들고 마주치는 순간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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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하튼 앞으로 SNS에 관해서 많은 가르침과 조언을 빌겠습니다.

 만나뵙게 되어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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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극히 평범한, 아니 오히려 조금은 뒤떨어지는(?) 18-24 세대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어렸을 적,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 고등학교 때 나는 온라인 매체와는 전혀 친숙하지 않은 인간이었다. 중학교때 까지 사용했던 아버지의 16비트 현대 컴퓨터, 70년대 후반 부터 집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것이었으니, 당대 한국 기술력의 첨단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검은색 바탕에 초록빛의 깜빡이는 커서...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컴퓨터라는 놈으로 했던 것은 지금까지도 너무나 친숙한 '너구리'... 당시에는 이름도 너구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여하튼, 수년 동안 한 게임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끝판을 깨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사실 난 스타크래프트도 그리 잘 하지 못한다. 치트키 없으면 재미가 없더라... ㅡㅡ;;)

 중학교 2학년때 '나진 컴퓨터'를 구입했다. 디지털 디바이스에 굉장히 조예가 깊었던(당시 친구들 사이에선 '컴퓨터 박사'라 불리웠던) 친구가 몇날 며칠을 고생하다 골라준 컴퓨터라 처음부터 기대가 너무 컸다. 당시 한창 유행했던 대우, 삼보, 삼성 컴퓨터가 아니라 영남 지방의 향토 기업인 나진 컴퓨터를 구입한 이유도 단 한가지, 서비스로 끼워 주는게 많아서 였다. 여하튼 그 놈의 컴퓨터는 정말 뽕을 뽑을만큼 뽑았다. 컬러 화면이 너무 신기했던 나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적색경보'에서부터 시작해 오만 잡스러운 게임을 몽땅 구입하기 시작했고, 시장 통 구석에 비밀스러운 '씨디 깡' 집에 가서 그 당시에 출시된 거의 모든 게임을 가짜 씨디에 구워서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그 시절 모은 가짜 씨디가 수북히 쌓여있다. 압축 방식이 'Ghost' 였던가??

 3학년이 되어서야 컴퓨터 통신이란걸 접하게 되었다. 당시 여러가지 서비스 들이 있었는데, 내가 이용했던건 '천리안' 근데 그 마저도 동네가 후져서 속도가 엄청나게 느렸었다. 심지어 채팅 창에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는데, 상대방이 말이 없다면서 나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열 받아서 컴퓨터 채팅이란건 제쳐두고 한창 유행이던 'MAX'로 허기를 달랬다. 내가 기존에 구축하고 있던 인맥이 아닌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던 시기도 바로 그때부터 였던것 같다. 비록 'MAX'라는 놈과 함께이긴 했지만...

 고등학생이 되지 드디어 광케이블이란 놈이 들어왔다. 당시 효용성을 이해하지 못하시던 부모님을 친구들 다 동원해서 힘겹게 설득하고, 라우터 대여비 무료와 3개월 무료 이용권과 함께 '두루넷'을 집으로 모셨다. 그 마저도 쉽지 않았던게, 우리 동네는 원래 광케이블이 들어오지 못하는 동네였단다. 지금에야 전국 산골 구석에도 광케이블이 들어가지만 당시엔 판자촌이 즐비했던, 그래서 인구밀도가 높았던 우리 동네엔 인터넷 이용 인구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광케이블이 설치되면서 내 삶은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당시 한창 유행했던 '세이클럽'과 '다모임'도 나의 디지털 라이프의 변혁에 큰 역할을 했다. 아직까지도 대구 지방에 내려가면 많은 이들이 '세이클럽' 타키를 이용한다. 나는 세이클럽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했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에 큰 희열을 느꼈다. 게다가 나를 모르니 욕을 하든 음담패설을 하든 알게 뭐야... 하지만 다모임은 달랐다. 졸업 후 한번도 보지 못했던 국민학교 동창들의 사소한 실수, 예를들어 누구랑 사겼다가 깨졌다더라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친구 중학교 가니까 입이 험해졌더라.. 아무개랑 채팅하면 욕을 손가락에 달고 살더라.. 에 이르기 까지 학연으로 이어진 끈끈한 네트워크에서 한번 삐긋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이미지가 되어 버리곤 했다. 나는 그게 두려워 다모임을 활발하게 이용하지 않았다.

 수능이 가까워지자 망할놈의 '포트리스' 가 등장했다. 당시 대구에서도 뒤떨어지는 우리 학교는 '물량전만이 살길이다' 라는 모토하에 매일 밤 12시까지 학교에 잡아두고 그게 모자라 학원을 보내 놓고선 새벽 6시까지 등교 원칙이 철저했다. 주말은 물론 없었고, 하루에 부모님 얼굴 볼 시간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처절한 상황에서 원래 고개가 빳빳히 쳐 들리는 법, 학교 뒷문에 나 있는 개구멍을 통해 당구장, PC방, 노래방을 닳도록 드나들었다. 특히나 한창 열풍을 몰고온 '포트리스'의 인기는 대단해서 학교에서 랭킹이 성적순이 아니라 무슨별, 무슨 메달 인가로 매겨질 정도였다. 나도 정말 열심히 해서 '은달'까지 올라갔으나, 그건 순전히 '물량전'의 결과였지 절대로 내 실력이 향상된 것은 아니었다. 여하튼 나에겐 '포트리스' 게임 자체보다 더 재미있던게 있었으니, 바로 게임을 하면서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였다. '세이클럽'이 영문을 모르게 갑자기 죽어 버렸고, 재미있는 대화방은 전부다 '비공개'로 걸어 버리는 시점에서 같은 관심사와 대의명분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게임상의 채팅 공간은 새로운 놀이터였다. 특히나 같은 '클랜'으로 엮인 일련의 집단은 온, 오프에서 차별적인 모임을 갖는 등 상당히 독특하고 끈끈한 문화를 만들어 갔다. 난 당시 친했던 형, 누나 중 실명을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백마탄 환자'형 '칼이쓰마'형, '샤라방공주'누나 '칠공주넷째'누나 등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의 닉만 남았다.

 대학에 처음 입학하고 나선 '사람이 그리웠다.' 지방에서 올라온 데다가, 그나마 같이 올라온 동향 사람들은 다들 자기들의 필드에서 눈부시게 활약을 하고 난 정말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혼자 내 던져진 것 같았다. 며칠을 방에서 채팅만 하다가 정말 '오타쿠'가 되 버릴까 심각한 고민 끝에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갔다. 동아리, 동호회, 모임, 세미나, 포럼을 닥치는 데로 참석하며 사람을 갈구했다. 하지만 의미없는 다수의 모임인 대형 집단은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영양가가 없었다. 차라리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며 친해지는 게 훨씬 생산적이었다. 그러다 한창 재미를 느꼈던 것이 온라인 클럽, 다음 까페나 싸이 클럽에서 내 관심사를 검색하며 밤 새도록 친구를 찾아 웹의 바다를 헤맸다. 그러다 간혹 마음이 맞는 친구가 생기면 바로 MSN 메신저로 등록, 하지만 그 마저도 한번 시들해진 관계는 회복하기 힘들었다. '채팅' 과 같이 익명성에 기반한 네트워크가 아니라. '메신저'처럼 기존 관계의 유지를 위한 통신기기가 아니라, '클럽'과 '까페'처럼 의미없는 다수와의 관계가 아닌 내가 원하는, 내가 필요로 하는,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작금의 대학생들은 어디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가?

 '사람들이 이상계(웹)로 들어가는 이유는 누군가과 이어지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어짐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같은 친구를 평생 만나듯이 '통신'의 역할을 하는 매개체가 된다면 조금은 더 생명력이 길 수도 있겠다. 삐삐, 핸드폰, 메신저가 그러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통신 기기는 괄목할만한 기술적 진보다 뒷받침 되지 않고서야 그 헤게모니를 가져가기 힘들다. 다음 세상의 통신 수단은 무엇이 될까? 유비쿼터스? 유, 무선 통합 플랫폼? 나는 엔지니어임에도 불구하고 기술개발에 대해서는 그닥 친숙하지 않다.
 
 그렇다면 '관리'의 개념이 아닌 새로운 '만남'의 헤게모니를 가져갈 수 있는 차세대 서비스가 무엇일까? 그러한 고민과 기대를 가지고 오늘도 피플투 가족들은 열띈 토론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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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피플투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피플투의 모태는 작년 2월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컨셉 페이퍼 2장이 지금의 피플투의 시작이었다. 3D 아바타 채팅사이트 퍼피레드 를 운영하는 트라이 디 커뮤니케이션의 이용수 대표님이 피플투의 컨셉 페이퍼 2장을 보시고는 현장에서 현금 1억원을 투자하였다. 그를 바탕으로 피플투의 CTO인 백만도리님, 기획팀장님이신 쇼콜라님, 그리고 노주환 군과 내가 함께 지금의 피플투를 잉태하게 되었다.

 내가 김도연 대표님을 처음 만났던 것은 압구정동의 한 가라오케에서 였다. 누드 교과서로 유명한 (주)이투스의 김문수 대표님이 나와 같은 고등학교, 대학교 같은과 선배였기에, 1학년 때 누드 교과서 제작 일을 잠깐 했었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가끔씩 모여서 놀기도 한다.
 나는 노래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주로 함께 가라오케에 가서 놀게 되었는데, 어두 침침한 지하에서 지금의 김도연 대표님과 쇼콜라님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김 대표님은 그때 노래 부르는 날 보고 도대체 뭐가 마음에 들었는지 피플투 프로젝트로 꼬시기 시작했다.

 2006년 7월의 오후, 청담동의 어느 음식점에서 대표님과 나와의 어색한 미팅이 시작되었다. 늘 어두침침하고 으시시한 곳에서만 보다가 밝은 대 낮의 햇살 아래서 만나니 무척이나 어색했다. 대 낮부터 술을 마시며 이런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이 참 술을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이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해보면 재밌겠구나.' 서로가 눈이 맞았다고나 할까?

 압구정동의 한 까페에서 10분정도의 BM 설명을 듣고 이 서비스가 세상에 나온다면 첫째로, 내가 꼭 이용할 것 같고, 둘째로 내 친구들은 더 좋아할 것 같았기에 이것저것 재지 않고 학교도 휴학하고, ROTC도 때려치고, 장학금을 종잣돈으로 삼아 지금 여기까지 왔다.

 처음에는 사무실도 없이 스타벅스나 토즈를 사무실 대용으로 삼아 회의를 했다. 스타벅스에서는 커피값이 아까워 눈치보며 한, 두개 시켜 놓고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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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이용수 대표님께서 강남구청 트라이디 커뮤니케이션 회의실을 빌려주시기 전까지 토즈는 우리의 주 회의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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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동안 우리의 회의실이자 사무실이 되어 주었던 트라이디컴즈 대 회의실]

 그리고 처음으로 떠난 워크샾, 강촌에 아름다운 펜션에서 우리의 역사적인 사진이 탄생 되었다

[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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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했다.]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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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사람, 한사람이 알파벳 하나를 만들어 People2가 완성되듯, 피플투의 철학도 세상 모든 사람 개개인이 자신의 가치를 통해 서로 연결되고, 서로를 완성해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06년 10월 12일, 우리는 지금의 보금자리인 신촌 사무실에 둥지를 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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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사무실을 계약한 날, 아무것도 없는 휑한 건물을 보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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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생각해보면 현재의 피플투는 진정 기적적인 공간이다. 컨셉 페이퍼 두장에서 토즈를 거쳐 처음 신촌 사무실에 입주할 때 까지만 해도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한치 앞도 알 수 없었다.

 하나의 웹 서비스가 탄생하기 위해 개발, 디자인, 코딩, 기획, 마케팅 전반에 이르기까지 능력있는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수없이 많은 밤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해 낼 수 있을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은 피플투에 있어 무척 뜻깊은 날이다. 신촌 사무실에 둥지를 튼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며, 이 기적의 공간이 있기까지 노력해온 주인공들이 한 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오늘을 피플투의 창립 기념일로 선포하며, 내년에는 반드시 공휴일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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