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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1 에디슨의 실수 : Soft Power



 토머스 에디슨이 1877년 7월 특허를 신청해 다음 해 2월 등록된 포노그래프는 인류 최초의 청각정보 축적기술이다. 사진기가 빛을 잡아 축적하는 기술이라면 에디슨의 포노그래프는 '소리의 자본주의'라는 20세기의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만들어내는 방아쇠가 되었다. 처음으로 물건처럼 소유할 수 없는 빛과 소리를 사고팔 수 있는 놀라운 시장 자원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술은 이미 산업기술에서 정보 미디어기술로 나가는 터널을 뚫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산업주의 시대를 살았던 에디슨은 자신이 만든 축음기각 지식정보사회의 탄생을 알리는 미래의 소리를 담고 있음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21세기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에디슨과 축음기의 역사는 바로 성공한 에디슨의 모습 속에 숨겨진 실패한 에디슨의 어두운 얼굴이다. 이상하게도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금언이 에디슨의 축음기 발명에는 통용되지 않은 것이다. 특별한 필요성의 산물로 축음기가 발명된 게 아니라는 사실은 그가 제출한 당시의 특허 서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제시한 필요성의 용도는 ①편지의 필기와 각종 속기의 대체 수단, ②맹인을 위한 소리 책, ③스피치 교수 장치, ④음악 재상기, ⑤가족의 추억이나 유언 기록, ⑥장난감, ⑦뉴스, ⑧각종 말의 보존 장치, ⑨교사의 설명을 재생하는 교육기기, ⑩전화 대화 녹음 등이다.

 그가 생각한 포노그래프는 오늘날의 녹음기 같은 것으로  ④를 제외한 나머지는 수십 조 원에 달하는 음악 미디어의 시장성과 별 관계가 없는 것이다. 특히 그는 다른 기계와 달리 자신이 발명한 축음기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콘텐츠라는 다른 성격의 원리가 교차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가 안 것은 단지 음을 녹음하여 축적할 수 있는 기계기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에디슨은 소리의 자본주의라는 엄청난 새시대의 시장을 열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미디어와 문화콘텐츠라는 지식정보사회의 입구를 열어놓고서도 10년 동안이나 그 기술을 방치해두고 있었다.

 음향을 기록한다는 뜻의 포노그래프라는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음의 인풋에만 관심을 두고 아웃풋(재생)에는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던 에디슨의 기자들 앞에서 행한 축음기 공개실험장에서의 에피소드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에디슨에게는 축음기가 음악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지식정보, 즉 기계기술 이상의 콘텐츠에 관한 문화 마인드가 없었던 것이다. 축음기를 만든 것은 에디슨이 분명했지만 오늘과 같은 디스크 산업, 그리고 미디어 산업에 소리축적 기술을 이용한 것은 에디슨이 아닌 베를리너요, 영국 그라모폰 사의 오언이요, 최초로 음악 살롱을 만든 프랑스의 파테였다.

 에디슨의 좌절을 통해 우리는 지식정보사회에서 고부가가치를 유발할 수 있는 산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 콘텐츠, 픽션, 디자인 파워가 결합된 미디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실패한 에디슨이 새로운 21세기를 여는 '트리거(Trigger)'로 작용한 것이다. 에디슨의 한숨 속에서 지식정보산업의 앞날을 내다볼 수 있다.

 또한 에디슨의 실패를 통해 특허권이 지식정보를 키우는 동인인 동시에 제약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특허법의 양날의 칼이 발명왕 에디슨의 개인사에서 최초로 징후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에디슨의 실패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무엇보다 소중한 교훈은 다니엘 벨이 말하고 있듯이 기계기술이 이제는 지적 기술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증기기관을 만들어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된 제임스 와트는 보일러공이며, 20세기 전기시대를 연 에디슨은 통신기술자 출신이다. 에디슨은 그 많은 전기기기를 발명했지만 맥스웰의 자장이론과 같은 물리학은 몰랐다. 지식정보사회의 새로운 기술발명은 땜장이 기술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의 IT나 BT는 기초과학과 고도의 전문지식, 그리고 복잡한 과학이 서로 얽힌 복합적 지식 없이는 새로운 기술혁명을 이뤄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정보사회를 오해하고 있다. 소리를 축적하는 청각정보 시스템을 만들어놓고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몰랐던 에디슨처럼, 그리고 사람이 없는 파리의 도심 풍경만을 찍은 외젠 앗제(Eugene Atget)가 출현하기까지 사진기를 만들어놓고도 거의 반세기 동안 인물사진밖에는 찍을 줄 몰랐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오늘날 인터넷기술을 비롯하여 그 많은 IT들이 바로 실패한 에디슨과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IT를 산업기술처럼 쓰려 했다가 닥친 이른바 e이코노미의 거품경제, 엔론, 월드컴의 부정 분식회계로 맞은 증권시장의 붕괴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몰고오고 있다.

 베를리너는 단순한 과학기술자가 아니라 시인이요, 자선사업가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21세기를 움직이는 사람은 에디슨의 기술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름도 생소한 베를리너의 상상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이어령, <디지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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